박진수
사회학을 기반으로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연구,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된 관심 분야는 문학, 영화, 음악, 건축(도시)이다. 2009년 모 대학 문학상 공모전에서 영화평론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을, 2020년 한 프랑스 문학 저널에 문학계간지 <문학동네>에 대한 글을 게재하면서 문학비평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최근 동료들과 조르주 디디-위베르만과 뤽 볼탕스키를 즐겁게 읽고 있으며, <씬1980>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혹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써내려 갈
삶의 해방일지
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의 바, 캔버스에 유화, 96X130cm, 1881-1882, 런던 코폴드 미술관
휴식의 의미를 단순히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존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이 자리한 생활세계가 어떠한 체제 하에 운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 사회 영역에 걸쳐 확립된 '근대사회'로의 전환은 노동 윤리와 생산성, 효율성 등을 작동 원리의 근간으로 삼는다(우리는 현재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작동 원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로서 교통(특히, 철도), 통신, 상업 등과 관련된 통일적인 시간 개념이 발명되었고, 우리는 이를 '표준시(Standard Time)'라고 부른다. 1844년 영국에서 최초의 표준시 개념이 도입되었고, 1884년 국제 자오선 회의를 통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24개의 시간대가 국제적인 승인을 받기에 이른다. 우리의 노동 또한 표준시를 기준으로 하루 중 근무와 퇴근, 일주일 중 노동의 시간인 주중과 휴식의 시간인 주말을 엄격하게 구획지어 놓았다.
근대사회의 이러한 시간적 경계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이다. 노동 시간 이후나 노동 시간 사이의 일상생활은 그것 자체로 자생적인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자신의 직업 세계를 잘 유지해 나가기 위한 자기 계발, 건강 증진 혹은 노동을 위한 재충전으로 기능화된다. 곧잘 미래의 성과만을 위해 현재를 소진하는 '시간 빈곤'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여가(餘暇, leisure). 근대 사회 이후 우리의 휴식은 곧 '일이 없어 남는 시간'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이러한 관념은 정반대였다. 여가, 즉 스콜레(scholē)는 일이나 노동(아스콜리아, ascolia)을 여가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겼다(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두에 "우리는 여가를 가지기 위해 일한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자유 시간'이나 '휴식'을 넘어 목적 없이 그 자체로 충족되는 활동이나 내면의 상태를 의미했는데, 바로 이 시간은 세계에 대한 사유가 가능한 시간, 궁극적으로는 예술이나 학문 탐구가 가능한 시간이었다(학교를 의미하는 독일어 schule와 영어 school의 어원).
여가는 생산성 향상이나 재생산, 혹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내재적 목적을 지니고 자기 성찰이나 창의성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요제프 피퍼(Josef Piper)는 『여가: 문화의 기초 Leisure, the Basis of Culture』(1952[1948])라는 책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총체적 노동 사회(total work society)'를 비판한다. 모든 것을 유용성, 효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근대사회, 특히 그것이 극단화된 형태인 독일 나치즘의 국가동원 체제에서 쓸모없고 목적 없는 행위는 죄악시되었다고 말이다. 더 나아가, 미셸 푸코는 '실존의 미학'(esthétique de l'existence)이라는 개념(특히,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1984))을 통해 고대 로마 제정 시대의 철학자들이 보여준 역사적 사례처럼, 개인이 자신의 삶을 외부의 규범에 따르지 않고 자율적인 주체로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 가는 윤리적 실천을 강조했다. 이러한 자기 배려의 실천적 탐색을 위해서 여가는 노동 중심의 개념으로 환원되어선 곤란하며, (예술, 학문 등) 창조적인 일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은 기존의 시간 개념을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재전유하는 실천이 우선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모데라토 칸타빌레(Moderato Cantablie).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를 뜻하는 음악 용어. 사람이 편하게 걷는 적당한 속도를 의미하며 이는 세계의 시간을 자신만의 속도로 재전유하는 실천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들렀던 클로드 드뷔시의 생가 박물관에는 그의 인생이 시기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보헤미안 시기(période bohème)'가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었다.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삶의 시간을 구성한 그 시기가 예술가에겐 자기 정체성 확립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가리키고 있었다.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은 『민중들의 이미지』에서 민중의 몸짓, 그 몸의 이미지, 그 '파토스의 양식'이 '근대적 삶의 화가'의 미학적 관심과 결정적으로 조우하게 될 때, 풍자적 리얼리즘과 민중에 대한 시화(詩化)된 관찰이 전개된다고 보았다. - 에드가 드가의 작품에서 관찰되는 민중은 여가의 환희를 보여주는 데 여념이 없는 반면, 이 작품 속 인물은 노동의 순간에 찰나처럼 존재하는 휴식의 시간이 결코 환희가 될 수 없는 노동자의 시대적 존재 조건에 대한 성찰을 시각이라는 감각적인 수준에서 우리에게 낮고 깊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자본주의라는 근대와 민중이란 공동체가 개별 사례를 통해 솟아오르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 롤랑 바르트는 후기에 담론의 권력성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을 하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그러한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글쓰기 실천을 감행한다. 그는 단장(斷章)이나 일기 등과 같은 에세이 형식을 통해 언어체계로 포획되어 의미화되는 글쓰기의 자리로부터 영원히 달아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에는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한 순수한 욕망과 즐거움이 우선적으로 자리한다. 진정한 휴식은 그가 말한 글쓰기(écriture)와 만날 것이다. - <세르지의 한나>라는 초단편 소설은 프랑스 문학 및 영화(에릭 로메르, 아니 에르노, 기욤 브락) 속에 파리의 외곽도시이면서 '신도시'인 세르지라는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대화를 에릭 로메르 영화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었던 시기에 대한 필자 나름의 분석을 바탕으로 구성해 본 것이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에서 탄생한 이 초단편소설을 글과 함께 게재하는 것은, 글 이후 혹은 너머의 영역에서 글쓰기의 윤리가 어떠한 현실화되고 현재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중요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르지의 한나 Hanna à Cergy
- 어디서 오셨다고요? - 한국이요, 북한 아니고 남한
우아즈강이 지나는 다리 위에서 세르지-뇌빌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말을 걸었다. 답변하는 일이 싫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빠른 질문에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나름의 방점을 두면서 말이다. '북한 아니고 남한' 같은.
재밌고 유익한 대화였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전력회사인 EDF에 파견 나온 영국 사람(보다 정확히는 스코틀랜드 출신 전기 엔지니어)을 만날 일은 흔치 않은데, 프랑스 회화, 영화, 건축 등에 대한 얘길 나눴다. '흄의 후예인 에든버러 사람답군'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종종 하면서. 나눈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단연 에릭 로메르에 대한 것이었다.
- 그는 <녹색광선>을 찍을 때처럼 경쾌한 리듬감을 가지고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을 찍었는데, 이곳 세르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를 찍을 땐 그런 요소들을 되풀이하진 않았어요. 슈퍼 16mm가 아닌 35mm로 찍었고, 영화 스태프도 이전 규모로 돌아갔죠. - 왜 그랬다고 보세요? - 그의 절친이기도 한 배우 로제트의 말에 따르면, 로메르는 로제트의 6년에 걸친 '바캉스 영화'에 자신의 카메라를 후원하고 친구를 위해 기꺼이 촬영도 해주었는데, 영화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촬영된 그 일화적인 단편들에 감동받은 것 같았대요. 미학적으론 뛰어나다고 볼 수 없지만, 스스럼 없이 가까이 지내는 배우들과 즐겁게 찍은 장면들이 담고 있는 특유의 에너지, 리듬감에 로메르가 반응했다고 볼 수 있죠. -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녹색광선>이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은 로메르가 감독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름을 잠깐 옆에 두고 시네필로 돌아가 영화를 제작한다기보다는 필름을 촬영한 경험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 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소 규모로 모든 씬을 즉흥적으로 찍었고, 어떤 씬은 프로듀서의 실수로 필름의 과다노출이 있기도 했지만 말이죠. - 제 생각엔 그런 사례가 역설적으로 감독의 존재 의의를 드러낸다고 봐요. 감독도 스탭도 즐기는 마음으로 편하게 찍었지만, 서사와 이미지는 감독 특유의 방식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죠. 아니, 그 색채가 더 짙어진달까요. - 네, 그런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지만요. - 근데 영화 쪽 일 하시는 거에요? - 아니요, 그냥 영화를 좋아할 뿐이죠. 좋아하니까 자주 찾아보고, 자주 대화 주제로 삼고. 영화를 연출하거나 연구할 생각은 없어요. 그저 좋아할 뿐이죠. 말년의 파스칼이 깨달은 것처럼 대화와 교양이 과학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일상의 대화 말이죠. -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다른 한국 사람들도 당신 같나요? - 대화를 하긴 하지만, 즐긴다고 볼 순 없고,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대화 상대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주제나 소재가 정해져요. 특히, 나이나 직업 등에 따라서 말이죠. 오늘처럼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걸 극도로 꺼리죠.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의도가 있거든요. 안전상의 문제인 걸 알겠는데, CCTV가 도처에 있고 치안이 우수한 지역에서 과하다 싶긴 해요, 제 생각엔. - 그럼,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어떻게 사귀나요? - 많은 경우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 종교 단체, 동호회 등. 길거리나 공원, 카페 등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죠. - 사람들이 무척 외롭겠네요. 관계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의존적이라면, 대화가 그렇게 쉽지 않다면. -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한국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반대로 제 생각이 특별하다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 그런가요? 선우 씨의 자기분석이 재밌네요. - 이제 해가 많이 졌는데, 그만 돌아갈까요? - 네, 그러죠. 즐거운 대화였어요. 다음에 또 우연히 마주칠 수 있겠죠. 좋은 저녁 되세요. - 감사해요. 한나 씨도요.
자신을 (실제 이름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나로 소개한 친구완 그 이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대화의 충만함을 빠르게 고정적인 관계로 전환하려고 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의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든다. 물론, 대화가 잘 통하는 관계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엔 뭐라 단정할 수 없는 두 사람만의 비밀스런 조건이 한두 가지쯤 개입하기 마련이니까. 분명 그건 대화의 문제완 차원을 달리한다.
생각해보면, 한나와 나눈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렸고 좋은 기운으로 충만했다. 그런 대화가 자주 일어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거의 일어나지 않는 건, 큰 문제인 것 같다. 높은 실업률이나 불안정한 고용도 인간 존재를 위협하지만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 중 대화도 한동안 부재하면 크나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말이, 표정이, 몸짓이 그 누군가를 보여주는 가장 실증적인 표지 같은 거라면 말이다. 말년의 파스칼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겐 거대한 역사적 이벤트를 기념하고 공유하면서 얻게 되는 안정감도 존재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보다 단순하고 일화적인 순간들로 지탱되는 존재의 층위도 존재하는 법이다. 대개는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이곳 친구들이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 적 있다. 운명에 이미 고개를 엎드리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면, 문화적인 요인을 찾아야 한다면, 나는 그걸 우정에서 찾겠다. 낯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 '사회적'이라는 형용사의 실체는 그렇게도 존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의 기세가 전 유럽을 조여올 무렵 운좋게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코로나는 이윽고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되었고, 큰 파도는 이후 몇 차례 더 밀려왔다. 육개월이나 일 년 가량이 내가 예상한 상한선이었는데, 코로나는 2년여 가까이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이제 돌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고, 꿈을 꾸듯이 지난 시간에 생생하게 사로잡히곤 하는 것이다.
세르지의 숲길과 호수, 사람들이 우아하게 전진하는 백조처럼 내 삶을 밀고 들어오곤 한다. 한나는 안녕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