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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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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스몰토크

이지

"가난한 사람들이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유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물 위에 누워 말했다. 나는 잠수를 했다가 물 위로 나가길 반복하느라 어떤 말은 들렸지만, 어떤 말은 놓쳤다. 그보다는 유나의 입안에 바닷물이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됐다. 여름 바다는 짰고 미지근했다. "그러니까, 병에 걸려야 해." 물 위에서 유나는 유유자적했다. "그들에게는 병 자체가 휴식인 셈이지. 그래야 쉴 수 있으니까." 유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 나는 내가 가난한 사람인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가난이라는 낱말 자체를 들은 지가 오래되었다. 모두의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닐 텐데. 세상에는 때마다 유행하는 말들이 있다. 우리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렇게 함께 바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허우적댔다. 고교 동창인 유나는 내 요가 클래스의 한시적 수강생이기도 했다. 나는 바닷가 근처에서 요가 선생으로도 살고 있다. 이건 다른 무엇으로도 살고 있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휴가가 끝나면 돌아가서 한동안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별일 없는 안부, 별것 아닌 말들. 그러다 한참을 쉬다 휴가 전에 '아직 클래스 열지?'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유나 옆에서 새우등 뜨기를 했다. 깊이 잠수하지 않아도 얼굴만 담그면 충분히 고요해졌다. 여름날의 해변은 사람들 소리로 가득했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과 멀어졌다. 물이 귓바퀴에 막을 만들며 세상의 소리를 먹어치웠다. 나는 물속으로 숨을 내쉬어본다. 보글보글 공기 방울이 내 어깨를 스치며 위로 올라간다. 그럴 때 잠깐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유나의 말이라든가, 떠나간 어떤 사람들, 어제까지 골몰했던 집세나 영수증 같은 것들. 물속에서는 모든 기억이 같은 속도로 희미해졌다. 여름 해는 물속에서 작은 등불처럼 흔들렸다. 나는 물속의 불에 혼을 뺏기지 않으려 고개를 들었다. 발이 모랫바닥에 닿았다. 파도는 계속해서 우리를 밀고 당겼다. "이 물은, 진짜 오래됐겠지? 여기엔 우리 말고도, 수천 번의 여름이, 겨울이 잠겨 있을 거야." 유나의 머리카락은 바닷물에 젖어 검은 부분이 더 검게, 탈색한 부분은 금빛으로 반짝였다. 유나는 어디서 왔을까. 무슨 일을 할까. 이곳에서 우리는 '감자' '학주' '체육'처럼 그 시절 선생님을 더듬더듬 소환해 낼 뿐이다. 휴양지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들은 절반 이상이 거짓말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옛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요가 클래스에서 한 번 씩 듣는 말들이 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다거나, 자기 자신을 증오한다거나, 헤어진 사람이 꿈에 나온다거나.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종교는 사랑일까. 물속의 불처럼, 가짜지만 진짜로 존재한다. "난 요가 할 때 말야, 아기 자세가 제일 좋아." 유나의 말에 나는 웃었다. 아기자세는 요가 중간에 쉬는 자세다. 그러니까 요가지만 요가가 아니다. 자궁 속 태아처럼 웅크린 새우등 뜨기는 그럼 수영인가 수영이 아닌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아기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아기도 힘들다. 먹고 울고 싸고 자야 한다. 커야 하니까. 그때 반투명한 덩어리가 파도에 밀려왔다. 죽은 해파리였다. 햇빛을 받아 매끄럽게 빛나는 희고 투명한 해파리를 두 손에 올려보았다. "죽었을까?" "응. 살아 있다면 우리를 쏘았겠지." "근데 예쁘다." 우리는 그 죽은 덩어리를 바다에 내려주었다. 해파리는 바다 위를 부유했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피할 것이다. 나는 물속에 얼굴을 묻었다.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유나는 계속 튜브 배 위에 누워있었다.

스몰토크

이름이라는 이름의, 쇼파

박혜원

오재식 씨는 자살 유가족으로 불렸다. 그는 이 이름을 얻기 위해 다른 유가족의 기자회견에 울면서 들이닥쳤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방송국 카메라들을 뚫고 기자들을 지나쳐 "내 딸도 같은 고통을 겪다가 죽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현장에서 교육감이 별도 조사를 지시하면서 네 달이 지나 그도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 드디어, 비로소, 끝내…혹은 겨우, 고작?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고생스럽게 얻고서 그에게 따라붙은 부사는 뭐였을까. 그의 딸이 학부모로부터 협박과 독촉을 당했고, 이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다 자살했다는 정황이 인정됐다. 그는 "서이초 선생님은 조화를 받는데 내 딸은 꽃 하나 받지 못했다"며 또 울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늦게나마 피해자라는 이름을 달았다. 대서특필까진 못했지만 여러 언론이 그녀를 A씨로 지칭해 기사를 썼다. 공론장에서 이름 하나 얻기가 이토록 번거롭다. A씨의 죽음은 '서이초'처럼 직접적으로 호명되긴 좀 어려웠다. 서이초 교사가 이미 그 자체로 교권 추락을 뜻하는 대명사가 된 뒤였기 때문이다. 이름 석 자가 사회 변화를 위한 떌감이 되어 사방에서 불리우는 일이 정말 영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까지 갈 것도 없는 이들도 있다. 몇 글자나마 간절한 사람들. 정신분열을 조현, '현을 고르다'라는 말로 바꾸기까지는 꼬박 100년이 걸렸다. 여기엔 그들의 생에 내린 비극이 마치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현을 바로잡는 일처럼 가벼울 것이란 희망이 담겼다. 병명일뿐이지만 그래도 두 글자 위에서 많은 이들이 쉬었다. 나 역시 그런 낭만에서 위안을 얻은 적이 많다. 지시하는 방식이 바뀌면, 바라보는 마음도 바뀐다. 명명(命名)이 쉴 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한 이유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죽음이 영혼의 (소멸이 아닌) 이동이라는 생각을 발명했다. 이름이란 이토록 허름한 쇼파와 같다. 벤치보다야 친절하지만 침대보다는 불편한. 억울하거나 내몰린 자들에게 세상이 선물처럼 가끔 선사하는 것. 그러나 그것을 누릴 시간은 잔인할만큼 잠시인. 나는 그 사람을 감옥에 보낸 뒤에야 비로소 피해자라는 이름의 쇼파에 오롯이 앉을 수 있었다. 짧은 휴식. 하루, 어쩌면 4초. 딱히 할 일이 없더라. 그래서……일어났다. 겨우, 아니 고작. 돌이켜보니 사실 오재식 씨가 아니라 내가 그때 떠올렸던 부사들이다. 쇼파에 앉은 뒤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깨달을 수밖에 없었는데, 쇼파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쇼파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끝맺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기자로 일하며 접한 사건들 중 완벽하게 종결된 건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시간에 떠밀려 기억에서 쫓겨났을 뿐이다. 오재식 씨의 기자회견 현장은 그래도 집중도가 높았다. 교권이라는 의제가 뜨거웠고 기자회견이 열린 경위도 여러모로 드라마틱한 구석이 있었다. 여느 때였다면 사실관계를 파고들기 바빴을 질의응답 시간, "하고 싶으신 말이 있느냐"는 정중한 물음이 나왔다. 오재식 씨가 '하고 싶은 말'을 시작했을 때, 마이크 연결이 잠시 끊겼다. "마이크 가까이 대라고 해" 조급한 카메라 기자들이 다그쳤다. 유가족이라는 이름 위에서의 그의 휴식이, 그것을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기자들의 관심이 그에게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신이 들이닥쳐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간 그는 지금 어디까지 걸어갔을까. 포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고인인 당사자도 익명인 마당에 오재식이라는 세 글자가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리 없다. 그가 가능한 멀리 걸어갔기를 바랄뿐이다. 딸의 죽음 따위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런 게 가능하다면. 다만 나는… 10년을 걸어왔는데도 가끔은 다시 그 쇼파에 앉아 눈을 뜬다.

이름이라는 이름의, 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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