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Noah
  • Upcoming!00
  • Please00
  • wait00
  • for00
  • us!00

Short Story

이지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소설 <담배를 든 루스> <나이트 러닝> <노란밤의 달리기>가 있습니다.

스몰토크

앙드레 케르테스(André Kertész) <Underwater Swimmer>

"가난한 사람들이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유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물 위에 누워 말했다. 나는 잠수를 했다가 물 위로 나가길 반복하느라 어떤 말은 들렸지만, 어떤 말은 놓쳤다. 그보다는 유나의 입안에 바닷물이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됐다. 여름 바다는 짰고 미지근했다. "그러니까, 병에 걸려야 해." 물 위에서 유나는 유유자적했다. "그들에게는 병 자체가 휴식인 셈이지. 그래야 쉴 수 있으니까." 유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 나는 내가 가난한 사람인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가난이라는 낱말 자체를 들은 지가 오래되었다. 모두의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닐 텐데. 세상에는 때마다 유행하는 말들이 있다. 우리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렇게 함께 바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허우적댔다. 고교 동창인 유나는 내 요가 클래스의 한시적 수강생이기도 했다. 나는 바닷가 근처에서 요가 선생으로도 살고 있다. 이건 다른 무엇으로도 살고 있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휴가가 끝나면 돌아가서 한동안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별일 없는 안부, 별것 아닌 말들. 그러다 한참을 쉬다 휴가 전에 '아직 클래스 열지?'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유나 옆에서 새우등 뜨기를 했다. 깊이 잠수하지 않아도 얼굴만 담그면 충분히 고요해졌다. 여름날의 해변은 사람들 소리로 가득했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과 멀어졌다. 물이 귓바퀴에 막을 만들며 세상의 소리를 먹어치웠다. 나는 물속으로 숨을 내쉬어본다. 보글보글 공기 방울이 내 어깨를 스치며 위로 올라간다. 그럴 때 잠깐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유나의 말이라든가, 떠나간 어떤 사람들, 어제까지 골몰했던 집세나 영수증 같은 것들. 물속에서는 모든 기억이 같은 속도로 희미해졌다. 여름 해는 물속에서 작은 등불처럼 흔들렸다. 나는 물속의 불에 혼을 뺏기지 않으려 고개를 들었다. 발이 모랫바닥에 닿았다. 파도는 계속해서 우리를 밀고 당겼다. "이 물은, 진짜 오래됐겠지? 여기엔 우리 말고도, 수천 번의 여름이, 겨울이 잠겨 있을 거야." 유나의 머리카락은 바닷물에 젖어 검은 부분이 더 검게, 탈색한 부분은 금빛으로 반짝였다. 유나는 어디서 왔을까. 무슨 일을 할까. 이곳에서 우리는 '감자' '학주' '체육'처럼 그 시절 선생님을 더듬더듬 소환해 낼 뿐이다. 휴양지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들은 절반 이상이 거짓말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옛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요가 클래스에서 한 번 씩 듣는 말들이 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다거나, 자기 자신을 증오한다거나, 헤어진 사람이 꿈에 나온다거나.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종교는 사랑일까. 물속의 불처럼, 가짜지만 진짜로 존재한다. "난 요가 할 때 말야, 아기 자세가 제일 좋아." 유나의 말에 나는 웃었다. 아기자세는 요가 중간에 쉬는 자세다. 그러니까 요가지만 요가가 아니다. 자궁 속 태아처럼 웅크린 새우등 뜨기는 그럼 수영인가 수영이 아닌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아기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아기도 힘들다. 먹고 울고 싸고 자야 한다. 커야 하니까. 그때 반투명한 덩어리가 파도에 밀려왔다. 죽은 해파리였다. 햇빛을 받아 매끄럽게 빛나는 희고 투명한 해파리를 두 손에 올려보았다. "죽었을까?" "응. 살아 있다면 우리를 쏘았겠지." "근데 예쁘다." 우리는 그 죽은 덩어리를 바다에 내려주었다. 해파리는 바다 위를 부유했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피할 것이다. 나는 물속에 얼굴을 묻었다.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유나는 계속 튜브 배 위에 누워있었다.

  1. [1]가난한 노동자에게는 침대만이 쉼터라는 말은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