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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홍유찬

홍유찬

나는 헤르만 헤세가 <밤의 사색>에서 "깊은 심심함"에 대하여 고백한 몇 가지 진실을 꺼내보곤 한다. 우선, 그것이 "무위"이며, 무위는 곧 깊은 심심함이고, 그 깊은 심심함은 휴식의 것으로 환원된다. 우리의 시간은 심심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왔지 않은가? 누군가 "더 해야 해" 또는 "휴식은 밥을 먹여주지 않아"라며 거듭 무위를 거부하고, 우리 삶에 제공된 가능성의 범위를 권태로 제한하고 심심함의 위력을 간과한다면, 나는 그에게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 이는 무슨 말을 해도 제 갈 길만을 간다. 탓하지 않는다. 나는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무위 아래 잠재된 자신을 찾아냈으면 하는 까닭이다. 내게 그것은 물론 영화였다. 영화는 가능성의 범위가 넓은 매체로, 우리 모두가 부르는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메모리아>는 그런 뜻에서 무위의 마법을 영화적으로 포착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혼의 자기 수양이 - <징후와 세기>의 "차크라"와 같은 형태로 - 관조되는 본작은 영화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찬탄할 만하다. '제시카'는 어느 날 듣게 된 쿵, 하는 익숙한 소음을 듣고,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녀의 모험이 지속될수록 그녀 안에 있던 기존의 기억은 타인이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되고, 급기야 그녀와 친밀한 관계였던 사운드 디자이너 청년 '에르난'이 존재하지 않는 이가 되기도 한다. 제시카는 정신적으로 취약해진 상태에서 근원을 찾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 끝에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에르난'인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던 그와는 다른 모습으로. 늙은 중년의 에르난은 자신을 외계인으로 소개하고, 콜롬비아의 한적한 정글에서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말을 건넨다. 제시카는 아무것도 믿지 않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가 요하는 철학이 모습을 드러낸다. 에르난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기에 기억의 경험을 중단하고, 그 정글에 남아 "휴식" 속에 있다.

홍유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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