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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박혜원

2022년 헤럴드경제에 입사해 기자가 됐습니다.

사회부에서 2년 동안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과 마음의 일에 대해 쓰다,

산업부에서 1년째 기업과 자본의 세상을 쓰고 있습니다.

이름이라는 이름의, 쇼파

오재식[1] 씨는 자살 유가족으로 불렸다. 그는 이 이름을 얻기 위해 다른 유가족의 기자회견에 울면서 들이닥쳤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방송국 카메라들을 뚫고 기자들을 지나쳐 "내 딸도 같은 고통을 겪다가 죽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현장에서 교육감이 별도 조사를 지시하면서 네 달이 지나 그도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 드디어, 비로소, 끝내…혹은 겨우, 고작?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고생스럽게 얻고서 그에게 따라붙은 부사는 뭐였을까. 그의 딸이 학부모로부터 협박과 독촉을 당했고, 이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다 자살했다는 정황이 인정됐다. 그는 "서이초 선생님은 조화를 받는데 내 딸은 꽃 하나 받지 못했다"며 또 울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늦게나마 피해자라는 이름을 달았다. 대서특필까진 못했지만 여러 언론이 그녀를 A씨로 지칭해 기사를 썼다. 공론장에서 이름 하나 얻기가 이토록 번거롭다. A씨의 죽음은 '서이초'처럼 직접적으로 호명되긴 좀 어려웠다. 서이초 교사가 이미 그 자체로 교권 추락을 뜻하는 대명사가 된 뒤였기 때문이다. 이름 석 자가 사회 변화를 위한 떌감이 되어 사방에서 불리우는 일이 정말 영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까지 갈 것도 없는 이들도 있다. 몇 글자나마 간절한 사람들. 정신분열을 조현, '현을 고르다'라는 말로 바꾸기까지는 꼬박 100년이 걸렸다. 여기엔 그들의 생에 내린 비극이 마치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현을 바로잡는 일처럼 가벼울 것이란 희망이 담겼다. 병명일뿐이지만 그래도 두 글자 위에서 많은 이들이 쉬었다. 나 역시 그런 낭만에서 위안을 얻은 적이 많다. 지시하는 방식이 바뀌면, 바라보는 마음도 바뀐다. 명명(命名)이 쉴 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한 이유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죽음이 영혼의 (소멸이 아닌) 이동이라는 생각을 발명했다. 이름이란 이토록 허름한 쇼파와 같다. 벤치보다야 친절하지만 침대보다는 불편한. 억울하거나 내몰린 자들에게 세상이 선물처럼 가끔 선사하는 것. 그러나 그것을 누릴 시간은 잔인할만큼 잠시인. 나는 그 사람을 감옥에 보낸 뒤에야 비로소 피해자라는 이름의 쇼파에 오롯이 앉을 수 있었다. 짧은 휴식. 하루, 어쩌면 4초. 딱히 할 일이 없더라. 그래서……일어났다. 겨우, 아니 고작. 돌이켜보니 사실 오재식 씨가 아니라 내가 그때 떠올렸던 부사들이다. 쇼파에 앉은 뒤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깨달을 수밖에 없었는데, 쇼파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쇼파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끝맺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기자로 일하며 접한 사건들 중 완벽하게 종결된 건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시간에 떠밀려 기억에서 쫓겨났을 뿐이다. 오재식 씨의 기자회견 현장은 그래도 집중도가 높았다. 교권이라는 의제가 뜨거웠고 기자회견이 열린 경위도 여러모로 드라마틱한 구석이 있었다. 여느 때였다면 사실관계를 파고들기 바빴을 질의응답 시간, "하고 싶으신 말이 있느냐"는 정중한 물음이 나왔다. 오재식 씨가 '하고 싶은 말'을 시작했을 때, 마이크 연결이 잠시 끊겼다. "마이크 가까이 대라고 해" 조급한 카메라 기자들이 다그쳤다. 유가족이라는 이름 위에서의 그의 휴식이, 그것을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기자들의 관심이 그에게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신이 들이닥쳐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간 그는 지금 어디까지 걸어갔을까. 포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고인인 당사자도 익명인 마당에 오재식이라는 세 글자가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리 없다. 그가 가능한 멀리 걸어갔기를 바랄뿐이다. 딸의 죽음 따위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런 게 가능하다면. 다만 나는… 10년을 걸어왔는데도 가끔은 다시 그 쇼파에 앉아 눈을 뜬다.

  1. [1]실제 사건 및 인물이나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