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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김지연

미술비평가. 급변하는 세계의 속도와 달라진 몸의 감각에 주목한다. 예술학과 법학을 공부한 뒤 다양한 매체에 미술에 관한 글을 써왔으며, 국공립 기관 및 지역 문화재단에서 현장 비평 활동과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책 『등을 쓰다듬는 사람』, 『마리나의 눈』 등을 썼다.

처음이면서 끝이고, 끝이면서 처음인 이야기

서윤아, <돌과책>, oilbar on linen, 162.2x130.3cm, 2019

돌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들어본 적 있어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해요. 사실 언제를 처음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저도 몰라요.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가 알 수 있는 처음은 아닐 거예요. 지구의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나온 시점부터 이야기해보죠. 붉은 용암은 서서히 굳으며 땅이 되었어요. 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비와 바람을 맞으며, 그냥 거기 있었답니다. 어디까지가 이 돌의 몸이었는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이 돌과 저 돌을, 이 땅과 저 땅을 가르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을 테니까요.

돌이 얼마만큼 오래 거기 있었는지 모를 만큼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이 도착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몸이 딛고 서 있는 땅이 당연히 자기들 소유라고 여겼는지, 돌에겐 묻지 않고 선을 긋기 시작했어요.[1] 이쪽은 내 것, 저쪽은 네 것. 그렇게 하면 선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봐요. 그들은 '내 것'인 돌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 원하는대로 이용하려고 궁리했어요. 곧고 날카로운 쇳조각이 돌의 몸을 뚫는 동안 넓은 땅이 진동으로 울리기 시작했어요.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돌이 쪼개졌어요. 원래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면 이제 다른 돌이 된 걸까요? 돌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여러 개로 쪼개져 뿔뿔이 흩어진 돌들은 이제 다른 시간을 살게 될 거예요.

저는 돌에 관한 많은 소문을 들었답니다. 이 중 몇 개는 당신도 알고 있을 거예요. 아메리카 대륙의 넓은 사막에는 커다란 돌이 혼자서 수십 미터씩 이동하곤 한대요. 어떤 돌은 망치로 치면 종처럼 울린대요. 사람들은 그 돌이 별의 기억을 가졌다고 멋대로 믿는 듯하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돌이 대신 판결을 내리게 하거나, 돌 앞에서 중요한 일을 맹세하곤 했어요. 돌이 왕을 결정하고 사람들은 그 왕을 섬긴다니, 재미있지 않아요? 별자리나 주술처럼 중요한 이야기들을 돌에 새기기도 했대요. 죽은 사람을 묻은 뒤 기억하기 위해서 그 위에 돌을 세우기도 했고요. 오랜 시간 동안 돌은 선택하고 판단하고 증언해왔어요. 돌의 의지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요.

지금 이야기하는 돌도 그런 돌이었냐고요? 아니에요. 이 돌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멀리멀리 떠나서 조각가의 손에 들어갔답니다. 쇠로 만든 정 위에 조각가의 망치가 힘차게 떨어질 때마다 돌의 가장 안쪽까지 진동이 울려 퍼졌어요. 조각가는 돌을 아주 소중하게 다루었답니다. 아주 단단한 부분은 조금 더 힘을 주어서 깎아냈고, 예상보다 쉽게 부서지는 부분은 아기를 다루듯 섬세하게 만졌어요. 돌은 서서히 다른 겉모습을 갖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부처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돌을 보며 아름답다고 했답니다. 그 아름다움이 돌이 원래 가진 무늬 덕분인지, 조각가의 실력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 돌은 조각가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예술이었을지 몰라요.

돌은 조각가의 작업실을 떠나 깊은 산 속 암자로 옮겨졌어요. 암자를 찾는 사람마다 돌을 만나러 왔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을 보고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2] 조각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하네요. 성모 마리아를 닮은 불상이라니, 이상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어느 쪽인지가 중요할까요? 모두 돌 앞에서 간절한 마음을 꺼내놓는데 말이지요. 낮은 목소리로 소원을 말하는 사람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따뜻한 손으로 돌을 어루만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돌이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그렇다면 그건 돌이 알아들은 걸까요, 부처나 성모 마리아가 들은 것일까요? 돌은 아무 말 없이 내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의 습기와 바닥에 떨어져 굳은 촛농, 손이 닿을 때 잠시 따뜻해지던 표면의 온도만이 거기 있었던 누군가의 마음을 증명했어요. 비록 잠시뿐이었지만요.

돌과 함께 암자에 머무는 승려들이 몇 차례 바뀌는 동안 사람들의 발길도 점점 줄어들었어요. 어느 해에는 아주 오랫동안 큰비가 내렸습니다. 무거운 흙더미가 돌을 덮쳤어요. 암자로 오르는 길이 막히고 난 뒤로 사람들은 거기 돌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지워지는 동안, 돌을 덮쳤던 흙도 서서히 씻겨 내려갔습니다. 새로 자라는 나무뿌리들은 돌의 연한 틈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 파고들었어요. 어느새 쪼개져서 더 작아진 돌은 이제 흙과 함께 조금씩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제가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이 모든 일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답니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에요.

산을 모두 내려온 돌은 강으로 굴러 들어갔어요. 거센 물살이 돌의 온몸을 거침없이 만졌습니다. 강의 바닥을 구르다가 잠시 멈출 때면 작은 물고기들이 돌의 그늘에 몸을 숨기곤 했어요. 그러다가 물살이 빨라지면 돌은 다시 굴러갔죠. 모서리가 깎이고 표면은 매끄러워졌어요. 시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돌에게 남은 물과 바람과 손의 흔적이 시간을 보여준다면, 시간도 만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강의 하구까지 굴러가 오랫동안 머물던 돌을 누군가 집으로 데려갔어요. 세월이 만들어낸 돌의 독특한 모습에 감탄하면서요. 그 사람은 돌의 몸에 맞춘 나무 받침대를 만들어준 뒤 장식장 위에 올려두고 매일매일 돌을 닦아주었어요. 부드러운 천으로 정성스레 문지르면 돌의 몸체가 반짝반짝 빛났어요. 가끔은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돌이 모여있는 전시장에 나가기도 했답니다. 사람들은 이 돌들을 '수석(壽石)'이라고 부르며, 그 아름다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어요. 그러나 정작 돌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요.

시간은 또 흘렀고, 돌을 데려온 사람은 어느 날부터 집 안에만 머물게 되었어요. 전시장에 돌을 데리고 나가 자랑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죠. 그러나 그는 돌을 바라보면 드넓은 자연 풍광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어요. 위로가 된다고 말이에요. 돌은 장식장 위에 머무른 채 점점 굽어가는 등을 바라보았어요. 창밖의 빛이 헤아릴 수 없이 여러 번 바뀌는 사이에 먼지가 수직으로 떨어져 돌의 몸체에 쌓였어요. 그 더께가 돌과 사람의 시간을 대신 말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다 마침내 그 사람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를 데려갔어요. 돌은 이후 오랫동안 혼자 머물렀습니다. 어느날 돌은 다시 누군가의 손에 들려 차에 실렸어요. 집에 자주 오던 남자였어요. 집주인에게 할아버지, 라고 불렀던 것도 같군요.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했을 거예요. 기억이 오래되어 희미하지만요. 한때 어린아이였던 남자의 얼굴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 있었답니다.

그가 돌을 데려간 곳은 무대였어요. 곧 연극이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 후, 돌과 남자에게 밝은 조명이 비추었지요. 극장을 찾은 많은 관객이 바라보는 가운데, 남자는 돌에게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수석을 웃기는 것이 이 연극의 목적이었답니다.[3] 배우는 돌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계속해서 농담을던졌어요. 돌이 웃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나 관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이 돌을 보고 웃었는지, 아니면 배우를 보고 웃었는지 확실치는 않아요.

연극이 끝난 뒤 돌은 소품실에 머물렀어요.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히면 밤이 되지 않아도 어두워졌어요. 불이 켜지면 돌은 다시 환한 무대 위로 올려졌어요. 첫 번째 극장의 소품실에서, 다른 극장의 소품실로, 또 다른 극장의 창고로 옮겨지곤 했어요. 어느날 공연은 해변의 야외무대에서 열렸어요. 무슨 축제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아주 많았답니다. 파도 소리가 배우의 대사 위로 겹쳐졌고, 거센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어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웃음소리도 컸고요. 그날 배우는 돌을 해변에 두고 갔어요. 잃어버렸는지 잊어버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마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는 이제 능숙한 중견배우가 되었고, 무대에는 다른 돌이 올라도 괜찮거든요.

돌이 머무는 자리에 물이 차고 빠지고 빛이 바뀌고 바람이 불었어요.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 가볍고 얇은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플라스틱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돌처럼 물과 바람, 햇빛의 손길에 부서지고 녹으면서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바위의 틈새를 메꾸고, 모래 알갱이와 함께 퇴적하며 굳어졌어요. 돌이 처음 굳어졌던 것처럼요. 사람들은 그것을 '뉴 락(New Rock)'이라고 부른다고 해요.[4] 인간의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돌. 돌은 그저 지켜보았어요.

돌이 이렇게 지내는 동안 어떤 돌은 땅속에서 뜨거운 열과 압력을 거쳤대요. 보석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보석이 되면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 기쁨을 줄 수 있다고 하던데요. 돌이 불상이나 수석이나 연극배우가 되어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것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높은 경제적 가치, 사랑의 증표, 맹세의 증인, 기억이나 기록의 도구 중에서 돌이 선택한 것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 돌은 보석이 되는 대신, 해변에서 새로운 돌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바람을 맞게 되었죠. 저도 이후의 이야기는 잘 몰라요. 돌은 아마 그 뒤로도 조금씩 더 작아졌을 거예요. 가루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혹시 슬퍼지셨나요?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작아지고 또 작아져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돌과 우리 사이의 구분은 사라져요. 우리도 돌도, 한때는 별이 폭발하며 흩어진 가루였을 테니까요.[5] 그러니 돌이 가루가 되어도 끝이 아니에요. 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일지도 몰라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품은 채로요.

※ 본 소설은 아래 작품들의 구조나 내용 일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다만, 소설의 내용은 허구이며, 실제 작품의 배경 및 맥락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1. [1]최찬숙의 영상 설치 <큐빗 투 아담(Qbit to adam)> (2021)
  2. [2]최종태의 조각 <관음보살상> (2000) (성북동 길상사 소재)
  3. [3]김은한의 연극 <유머가되> 중 "수석유머" (2025) (판타스틱씨어터)
  4. [4]장한나의 프로젝트 <뉴 락 연구> (2017~)
  5. [5]카를로 로벨리의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