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영
시산문집으로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 (유미주의, 2023) 가 있다.
픽션이라는 이름의 저승으로
다녀올게요 사실 내게 남아있는 것은 눈을 감아야지 볼 수 있는 것들
모든 방향으로 난파되는 돌이킬 수 없는
이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가 나의 내부인지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괄호를 부지런히 여닫는 작문만이 내 걸음을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저만치 머리 없는 말들이 나를 앞질러 뛰어갑니다 살고 싶어서
내 꿈보다 먼 곳으로 소란하지 않게
액자 한가운데 난 오솔길로 들어간 뒤로 얼굴을 영영 보여주지 않았던 내 친구는
새벽에 붉게 타들어 가는 장미 넝쿨이 담벼락의 고백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줬지요
너는 마치 네게 주어진 모든 페이지를 넘기듯 살았잖아, 나는 여전히 주머니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말들을 헤아리며 걷고
다음이라는 말은 너무 환해서 두렵다 이런 말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생겨나고
모든 밤을 마주하고 난 뒤에 살아있는 작가의 영혼은 조금 휘었습니다 그가 이제 책상에서 기획할 수 있는 것은
추한 구조 슬픈 담합
밤처럼 아름다운 영혼의 목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