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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서수민

‘빵과장미’ 빵집의 제빵사. 빵도, 장미도 쟁취한 자유인의 삶을 꿈꾸며 ‘빵과장미’ 문을 열었으나 현실은 빵의 노예. 그렇다면 복종하기로.

빵의 탄생

어느 새벽, 광주극장 실장님은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리고 앞집 관리인 아저씨는 건물 앞 거리를 청소한다.

새벽 6시 13분, 금남로 4가역 2번 개찰구 계단을 오르는 걸음. 빵의 탄생, 그 시작은 새벽을 깨는 걸음이다. 춥다. 계단이 받들고 있는 깜깜한 하늘을 마주한다. 어제 조금 더 검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름이 다가올수록 점점 밝아지는 하늘과 마주하겠지. 서둘러 가게를 향해 걷는다. 충장로 상가 골목 안쪽, 광주극장 곁. 그곳이 나의 빵터다. 외롭고 배고프던 송정역 골목 시절을 지나서 광주극장의 이웃으로 자리 잡은 지 5년째다.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옆에서 나는 오늘도 빵을 만든다. 손에 밀가루가 묻고, 공기 속 효모가 반죽 위에 내려앉는다. 빵은 오븐에서 완성되지만 그 시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숨이고, 그것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결국 나의 손이다. 그렇게 빵과장미의 새벽은 발에서 손으로 이어진다. 앞집 관리인 아저씨와 옆집 광주극장 실장님은 이미 바삐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과 자부심에 으쓱하며 가게 문을 열어젖힌다. 최소한의 불을 밝히고 서둘러 앞치마를 맨다. 오븐을 켠다. 삑- 어제부터 냉장고에서 저온발효중인 반죽을 꺼내고 발효기를 켠다. 윙- 발효종[1]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하고 냄새를 맡는다. 흠-

반죽통 뚜껑을 열어 뽀글뽀글 공기방울을 품은 반죽 위에 밀가루 한 줌을 날쌔게 뿌린다. 반죽카드를 이용해 반죽통 사면을 긁어주고 통을 뒤집어 조금은 차가운 반죽을 작업대 위로 꺼낸다. 잘 발효된 유산균의 향기가 코끝에 와닿는다. 어제부터 반죽 곳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숨 쉬어온 미생물의 흔적이 그대로, 만다라처럼 반죽의 뒷면에 남아있다. 얼기설기 이어졌다 끊어진 그물망같은 반죽을 스크래퍼로 무게에 맞추어 자른다. 손으로 반죽의 네 귀퉁이를 잡아당겨 반죽의 중앙으로 모은다. 반죽을 뒤집어 두 손으로 적당히 둥글려준다. 너무 과하게 힘을 주면 표면이 찢어지고 그렇다고 힘을 약하게 주면 반죽이 무너진다. 둥글려놓은 반죽의 힘이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반죽을 늘리고 접어 손바닥으로 반죽의 이음새를 여민다. 미생물의 숨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성형한 뒤 따뜻한 곳에 둔다. 다시금 깨어나 마지막 숨을 쉬도록.

부피가 조금 늘어난 반죽을 본다. 손가락을 가만히 대고 살포시 누른다. 미생물이 만들어놓은 공간이 충분한지 어렴풋이 느껴본다. 눌러진 반죽이 재깍 제자리를 찾으면 아직은 때가 아니다. 살랑살랑 흔들릴 만큼의 틈을 가지면서도 손가락의 외압을 차분히 복구해내는 내강을 가졌을 때, 그 시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한없이 기다려주면 반죽은 힘을 잃고 제 몸도 못 가눌뿐더러 물귀신처럼 애꿎은 손가락에 들러붙는다.

몇 개의 스위치를 조작한다. 삑-삐익-삑- 취익 푸욱[2]-.

제일 먼저 구워지는 깜빠뉴의 자태.

오븐 앞을 지켜볼 시간은 없다. 하나가 늦어지면 다른 것들도 줄줄이 늦어진다. 빵의 품질과 손님과의 신의가 무너진다. 종횡무진 주방을 누비며 다른 반죽들을 분할하고, 둥글리고, 성형한다. 반복, 또 반복. 그러다 문득 오븐 앞으로 걸음을 옮겨 오븐에 빛을 밝히면

팡- 빵-

하고 터져 오른 것. 부풀어 갈라진 표면,

반죽. 아니 이제는 빵이다.

초코헤이즐깜빠뉴 반죽의 뒷면.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장렬하게 전사한 수백억 수천억의 미생물 그리고 그 위에 탄생한 빵.

빵이 다 구워질 즈음이면 신기하게도 냄새가 먼저 신호를 보낸다. 타이머가 울리기 전, 코끝을 스치는 빵내음. 나는 먼저 눈으로 구움색을 본다. 황금빛과 갈색 사이, 그 어딘가. 그다음 장갑을 끼고 빵을 만진다. 적당히 단단한지 과하게 깡깡[3]하진 않은지 아니면 아직 숨이 남아 말랑하진 않은지를 가늠한다. 빵을 꺼낼 때 기분 좋은 가벼움이 느껴지면, 밑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을 때 통통 맑은 소리가 나면, 됐다. 잘 구워졌다. 백도씨에 가까운 들끓는 빵이 오븐 밖으로 나오면 노래를 부른다. 짜작-탁-따각따각-. 오븐에서 나온 빵은 식으면서 겉껍질은 수축하고 속살의 수분은 빠져나간다. 그 때 미세한 파열음이 생긴다. 이를 ‘노래하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샹떼(Chanté)라 부른다. 대체 빵향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길에서는 초콜릿향, 저 길에서는 군고구마향, 아니 견과류향도. 복잡미묘한 빵향기의 향연에서 길을 잃고 그저 매혹된다. 빵향기에 취해 빵들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홀로 주방에서 탭댄스라도 추고싶지만 또 다른 반죽들이 자신의 환골탈태를 기다리고 있다. 바삐 움직이자.

딸랑딸랑. 손님이 들어온다. 빵빵한 빵들이 빵긋빵긋 웃고 있다.

어제 퇴근하며 밥을 주고 키운 발효종으로 내일 구울 빵반죽을 한다. 조금 남은 발효종에 다시 물과 밀가루를 밥으로 준다. 이건 모레 구울 빵반죽 씨앗이다. 그렇게 이어진다. 물과 소금, 밀가루, 공기 그리고 미생물. 이것들로 나는 오늘도 빵을 만든다. 돈도 번다. 먹고 산다.

  1. [1]밀가루와 물, 공기 중에 존재하던 야생효모, 유산균을 선택적으로 배양한 미생물 배양액. 물과 밀가루로 시작해 같은 재료를 먹이로 주면서 살아있는 상태를 이어나간다. 이 발효종으로 사워도우 반죽을 발효한다. 빵집의 역사와 발효종의 역사가 같은 곳들이 더러 있다. 빵과장미 발효종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2. [2]스팀이 발사되어 오븐 돌판에서 물이 증발하는 소리.
  3. [3]전라도 사투리. 단단하다, 속이 치밀하다를 뜻함. 그냥 단단하다는 말로는 모자라다.